무덤에 새긴 한 단어
1338년, 오늘날의 비슈케크 근처에서 한 석공이 묘비에 사망 원인을 새겼다. 거의 700년 뒤, 바로 그 무덤들이 흑사병이 어디서 시작됐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지 과학자들에게 알려 주었다.
영상 보기 · 80초그 단어
“1338년, 키르기스스탄의 한 계곡에서 석공이 묘비에 한 단어를 새겼다. 역병.”영상에서
오늘날의 비슈케크 근처에 있던 기독교 마을은 둥근 강돌 아래 죽은 이들을 묻었다. 돌마다 십자가와 몇 줄의 글을 새겼다.
1338년, 한 석공이 새로운 내용을 더했다. 죽은 이유였다. 단 한 단어 — mawtānā, ‘역병’. 특정한 병명은 아니다. 14세기에는 페스트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덮치는 죽음을 뜻했다.
직접 읽어 보기
시리아 문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며 모음은 대부분 생략한다. 읽는 사람이 채워 넣는다. 글자를 눌러 보자.
또 하나. 그리고 또 하나.
“다른 무덤에도. 그리고 또 다른 무덤에도. 2년 동안 죽은 이들이 끊이지 않았다.”영상에서

같은 공동체의 묘지 두 곳이 남았다. 하나는 카라지가치, 다른 하나는 더 동쪽의 부라나 탑 곁, 토크모크 근처에 있었다. 고고학자들은 발굴 과정에서 첫 번째 묘지의 묘비 456개와 두 번째의 11개를 기록했다.
연도가 적힌 묘비들은 수십 년에 걸쳐 분포한다. 그러다 갑자기 수가 치솟는다. 죽은 이들 가운데 유난히 많은 사람이 1338년과 1339년, 단 2년 사이에 묻혔다. 그 시기의 몇몇 묘비에는 같은 사인이 적혀 있다.

그들은 누구였을까?
“그들은 실크로드의 기독교인들이었다. 튀르크어로 말하고 시리아 문자로 썼다.”영상에서

그들은 동방교회 에 속했다. 중세에 가장 동쪽까지 뻗어 있던 교회로, 공동체들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중국까지 실크로드를 따라 이어져 있었다. 예배 언어는 아람어의 한 방언인 시리아어였고, 일상 언어는 튀르크어였다.
그래서 독특한 방식을 썼다. 튀르크어 단어를 시리아 문자로 적은 것이다. 추이계곡의 많은 묘비는 한 줄에 두 언어를 섞어 쓴다.
두 묘지, 하나의 공동체
오늘날의 추이계곡. 실제 축척과 다른 개략도.
신자 Sanmaq
“한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호랑이해. 이곳은 신자 Sanmaq의 무덤이다. 그는 역병으로 죽었다.”영상에서
대부분의 묘비는 말이 적다. 십자가, 날짜, 이름뿐이다. 하지만 카라지가치의 한 묘비는 이 이야기 전체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묘비명이 되었다.
한 줄에 두 달력이 함께 있다. 1649년은 시리아 기독교인들이 수백 년 동안 써 온 셀레우코스 기원, 곧 ‘그리스인의 연대’로 센 해다. 호랑이는 초원의 12년 동물 주기에서 왔다.
날짜 해독하기
묘비에 적힌 연도를 골라 보자.

8년 뒤
“8년 뒤, 페스트가 흑해를 덮쳤다. 그리고 유럽으로 번졌다. 흑사병은 유럽 인구의 최대 절반을 앗아 갔다.”영상에서
- 1338–1339추이계곡카라지가치 묘비에 새겨진 ‘역병’.
- 1346흑해흑해 연안의 킵차크한국 영토에서 페스트가 발생한다. 역사가들은 보통 여기서 흑사병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 1347시칠리아 메시나배가 지중해로 병을 실어 나른다.
- 1348서유럽피렌체, 파리, 런던.
- 1353유럽이 죽은 이들을 세다7년 사이, 기록된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대유행이 되었다.
최대 절반
역사가들이 추정한 유럽의 사망 비율은 인구의 약 30%에서 60%에 이른다. 드래그하여 비교해 보자.

여기서 시작됐을까?
“5세기 뒤, 발굴자들이 이 무덤들을 발견하자 학자들은 물었다. 여기서 시작됐을까?”영상에서

1885년, 지역 학자 니콜라이 판투소프가 카라지가치 묘지를 지도에 표시했다. 발굴은 1892년까지 이어졌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동양학자 다니엘 흐볼손이 묘비명을 읽고 출간했다.
급증한 사망자. ‘역병’이라는 단어. 그리고 흑사병이 유럽에 도착하기 불과 8년 전의 날짜. 질문은 분명했지만 돌밖에 없었기에 아무도 답할 수 없었다. 130년 동안 미해결로 남았다.
페스트였다
“2022년, 과학자들은 그 무덤의 치아에서 DNA를 추출했다. 페스트였다.”영상에서

2022년, 유전학자와 역사가들로 구성된 연구팀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유골을 다시 조사했다. 7명의 치아에서 시료를 채취했다. 카라지가치 5명, 부라나 2명이었다. 치아는 단서를 찾기에 좋은 곳이다. 치수에는 피가 가득했고, 피에는 죽음의 원인이 된 것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카라지가치의 5명 중 3명에게서 다음 세균의 DNA가 나왔다. Yersinia pestis, 즉 페스트균이다.
7명, 세 개의 답
돌을 눌러 보자.

흔한 페스트가 아니었다
“아무 균주나 나온 것이 아니었다. 유럽을 휩쓴 균주들의 조상이었다. 살아 있는 근연 균주들은 지금도 톈산의 마멋 속에 숨어 있다.”영상에서
두 유전체는 페스트 계통수에 올릴 만큼 상태가 좋았다. 그 위치는 가장 유명한 갈림길, 페스트가 네 갈래로 갈라진 ‘빅뱅’이었다. 그 가운데 한 갈래가 흑사병을 유럽으로 가져갔다. 카라지가치 균주는 네 갈래 모두의 조상으로 바로 그 분기점에 놓인다.
카라지가치의 위치
간략한 페스트 계통수. 시간은 위로 흐른다.
그렇다면 현존하는 가장 가까운 친척은? 이 균주들은 오직 한 지역, 키르기스스탄 동부와 카자흐스탄 동부, 신장에 걸친 톈산에서 나왔다. 대부분 마멋과 그 기생충에서 발견되었다.

그들이 섰던 곳에 서다
“마을은 사라졌지만 두 번째 묘지는 부라나 탑 곁에 있었다. 비슈케크에서 가볍게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다.”영상에서

카라지가치에는 찾아가 볼 만한 유적이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같은 공동체는 부라나에도 죽은 이들을 묻었다. 11세기부터 평원에 서 있는 벽돌 미너렛 옆이다. 탑과 풀로 덮인 옛 도시 터, 석상이 늘어선 들판을 비슈케크에서 하루 나들이로 둘러볼 수 있다.

돌에 새긴 한 단어
— 그리고 어쩌면,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대유행의 발원지.
80초 영상 보기같은 이야기를 돌 모자이크로 만난다. 조각 하나하나가 스스로 제자리를 찾아간다.
직접 보고 싶으신가요?
여행 경로와 장소, 방문하기 좋은 달까지. 키르기스스탄 여행 계획에 필요한 정보를 만나 보세요.
출처
- M. A. Spyrou et al., “The source of the Black Death in fourteenth-century central Eurasia”, Nature 606, 718–724 (2022). doi.org/10.1038/s41586-022-04800-3
- D. Chwolson, Syrisch-nestorianische Grabinschriften aus Semirjetschie, 상트페테르부르크, 1886–1897년.
- W. Klein, 시리아 문자 묘비명에 쓰인 튀르크어 연구, Hugoye: Journal of Syriac Studies 5:2.
- O. J. Benedictow, The Black Death 1346–1353: The Complete History, Boydell, 2004년. Benedictow는 유럽 인구의 약 60%가 사망했다고 추정한다. 다른 역사가들은 약 30%부터 시작하는 더 낮은 수치를 제시한다.
- Kyrgyz Seasons, 부라나 탑: 입장료와 관람 안내.
사진
- 모자이크: Kyrgyz Seasons 영상 《무덤에 새긴 한 단어》의 장면.
- 카라지가치 묘비: Spyrou 외, Nature 2022년, Extended Data, CC BY 4.0, Wikimedia Commons 경유.
- 투르네 세밀화: Gilles Li Muisis의 연대기, 벨기에 왕립도서관, 퍼블릭 도메인.
- 회색마멋: Egor Volarov, CC BY 4.0. 부라나 탑과 유적: Bernard Gagnon, CC0. 모두 Wikimedia Commons 경유.



















